전등사

전등사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랑성내에 아늑히 자리잡고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에 아도화상이 처음 창건하고 진종사(眞宗寺)라 이름 지었습니다.그후 고려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귀한 옥등을 시주했다해서 전할전, 등불등자(傳燈寺)를 써서 전등사로 개명한 사찰입니다. 이절의 입구에 있는 대조루 밑을 지나들어가면 정면에 보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보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Read more
보문사

보문사

바다를 건너 차량으로 15분간 들어가면  낙가산 서쪽바다가 굽어 보이는 곳에 보문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가 금강산으로부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절을 세우고 보문사라 하였습니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서 절을 창건 후 14년이 되던 해에 고씨성을 가진 어부가 바닷가에서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낚아올려 절의 우측 석굴에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그 때로부터 이 석굴에 기도를 하면  기적이 이루어져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절 뒤편에는 마애석불이 조각되어 있으며 그 앞에서 보이는 서해풍광 또한 일품입니다. 보문사 경내에는 300여명의 승려들이 수도했을 당시 사용하였다는 큰 맷돌과 향나무, 1975년에 주조한 범종이 있습니다.Read more
연미정

연미정

이 정자의 초창년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고종이 구재(九齋)하기 위하여 학생을 이곳에 모아놓고 면학(勉學)케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후 조선 중종 5년 (1510) 삼포왜란때 방어사가 되어 왜적을 무찌르고, 중종7년 (1512) 순변사가 되어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황형에게 이 정자를 하사하였다 한다. 이 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한 줄기는 서해로, 또 한줄기는 강화해협(염하강)으로 흘로 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燕尾亭)라 하였다 한다. 높은 석주위에 세운 팔작집으로 영조 20년(1744) 중건, 고종 28년(1891) 중수 등 수차에 걸쳐 보수하였다. 조선 인조 5년(1627) 정묘호란시 이곳에서 청국과 강화조약(講和條約)을 체결 한 곳이기도 하다.Read more
갑곶돈대

갑곶돈대

갑곶돈대(강화8경,국방유적,문화재/국가/사적,읍면별/강화읍)] 갑곶돈은 구강화대교 입구 부근으로 추정된다. 주변에 면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간간이 보인다. 이 돈대 하부는 암반으로 되어 있어 돈대 설치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북쪽으로는 갑곶나루가 위치하고 있어서 김포의 문수산성과 통할 수 있는 통로로서 활용되어 왔으나 현재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이 돈대는 고려 고종 19년(1232)부터 원종 11년(1270)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후 조선 인조22년(1644)에 설치된 제물진(갑곶진)에 소속된 이 돈대는 숙종 5년 (1679)에 축조 되었다. 고종 3년(1866) 9월 7일 병인양요시 프랑스 극동함대가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강화산성, 문수산성등을 점령하였다. 동년 10월13일 프랑스군은 삼랑성(정족산성) 전투에서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 패해 패주 하였다. 이때 강화성 내에 있던…Read more
마니산

마니산

마니산은 해발 469.4m의 높이로 세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는데 그중에 가운데 봉우리가 참성단이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국가의 큰 행사가 있으면 제를 지내고 전국체전,올림픽, 월드컵등 큰 행사가 있으면 성화를 위해 최초 채화를 하는 곳이기도 한데 이곳에서 우리 휴먼스토리의 2012년의 사업장 안전과 직원들과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올해 화합과 성장을 기원하고 하산을 하게 되었다.Read more
광성보

광성보

이곳은 사적 제227호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자연 지형이 험한 요새로 강화 12진보의 하나입니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터입니다. 불은면 덕성리 해반에 소재하고 있으며, 강화해협과 김포와 마주보고 있습니다. 화장실 위치가 무기고였다고 전합니다. 과거에는 감나무 아래 기와가 수북하였다고 합니다. 광성보는 덕진진, 초지진, 용해진, 문수산성 등과 더불어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 입니다. 고려가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도읍을 옮기면서 1233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외성을 쌓았는데, 이 성은 흙과 돌을 섞어서 쌓은 성으로 바다길을 따라 길게 만들어졌습니다. 광해군 때 다시 고쳐 쌓은 후 효종 9년(1658)에 광성보가 처음으로 설치되었습니다.…Read more
초지진

초지진

사적 제225호로 강화의 동남단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하고 김포시 대명리와 마주 보이는 곳이다. 1656년 진이 설치되고 1679년 초지돈, 장자평돈, 섬암돈이 축조되어 이 진에 소속되었다. 그리고 6문의 포가 설치된 황산포대와 12문의 포가 설치된 진남포대가 있다.고종3년(1866) 10월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침입한 프랑스군 극동함대 및 고종 8년(1871) 4월에 통상을 강요하며 내침한 미국 로저스의 아세아 함대, 고종 12년(1875) 8월 침공한 일본군함 운양호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격전지이다. 진장으로 1666년에는 병마만호가 있다가 1763년에는 첨사가 있었고 군관 11명, 사병 98명, 돈군 18명에 배 3척이 배치되어 있었다. 병인·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등 근대까지 줄기차게 싸운 격전지이다. 1871년 4월 23일 미국 로저스가 지휘하는 아시아…Read more
적석사

적석사

적석사는 고려산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구려때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다섯색의 연꽃이 피어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합니다. 그 중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를 세웠는데 그곳이 이 절의 전신입니다. 적석사 뒤편 산정상은 낙조봉이라 불리며 이곳에서의 낙조는 강도팔경의 하나로 꼽힐만큼 아름답습니다.Read more
강화역사관

강화역사관

강화역사관은 강화대교 지나 우측 갑곶돈대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구석기시대 이후로 현재까지의 역사, 문화유적이 산재하여 '지붕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강화에 대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1988년에 완공되었으며 2층 4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층에 올라가면 창 밖 해안순환도로 왼편으로 강화외성터가 흙길처럼 보입니다. 역사관 앞 잔디밭에는 무동력선으로 유명한 강화 젖새우를 잡았던 해선망 어선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역사관을 나와 왼편으로 가시면 400년 된 갑곶리탱자나무가 있습니다. 갑곳리탱자나무는 강화도가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탱자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이 됨을 입증하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강화도에 탱자나무를 심게 된 이유가 성벽 밑에 심어 철조망과 같은 역할을 하여 적병의 접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 탱자나무는…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