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자의 초창년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고려 고종이 구재(九齋)하기 위하여 학생을 이곳에 모아놓고 면학(勉學)케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후 조선 중종 5년 (1510) 삼포왜란때 방어사가 되어 왜적을 무찌르고, 중종7년 (1512) 순변사가 되어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황형에게 이 정자를 하사하였다 한다. 이 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여 한 줄기는 서해로, 또 한줄기는 강화해협(염하강)으로 흘로 그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 하여 연미(燕尾亭)라 하였다 한다. 높은 석주위에 세운 팔작집으로 영조 20년(1744) 중건, 고종 28년(1891) 중수 등 수차에 걸쳐 보수하였다. 조선 인조 5년(1627) 정묘호란시 이곳에서 청국과 강화조약(講和條約)을 체결 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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